침묵

아무일이 없다는 듯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잠깐잠깐 생기는 분노는 어찌할 수 없는 듯 하다가도 금새 분노를 가라 앉힌다.

“내년 우리 방향은 집중에 있다.”

집중이란 뭘까. 집중이라는 단어에 꽂혀 억울한 그 일이 다시 생각난다. 치밀어 오르지만 그러하면 안된다. 그냥 잊으면 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른다.

탁 탁탁탁타탁탁

경쾌한 키보드 소리. 엑셀시트를 만지며 완성되어가는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소리와 함께 시간은 지나간다.

어느덧 하루 중 제일 반가운 시간인 퇴근이 다가온다. 가장 치열하게 일할 때를 돌이켜 보면 퇴근시간부터 또 시작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해도 일은 끝나지 않았고, 아니, 일을 끝내지 않았고 더욱 정교하게 더욱 멋있게 일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지금 시점의 나는 더이상 그때는 찾을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건 결국 나다. 나의 중요함을 찾아 일을 빨리 정확하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할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신뢰를 받으려 했지만 돌아온건 이지매와 같은 마녀사냥.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살아온 그 기나긴 시간들이 별 것 아닌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입바름으로 무너졌다는 충격은 꽤나 많이 크게 다가왔다.

이틀 정도아니 일주일 넘게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벗어나기 위해 생각한 방법은 무시였지만 같은 공간에서 누구는 괜찮고 나는 참아야하는 이질적인 시간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근무시간에는 최대한 일에 집중하되 빨리 공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고, 그래야 살았다.

아무튼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도 그냥 직장인이 되어간다. 직장내에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 몸부림했던 시간들은 하나둘씩 증발해나가버린다.

그래서 인지 자꾸 눈치를 본다. 무의식적 눈치라할까? 반응이라고할까? 아니 눈치라기보다는 그 몇몇에 대한 적대감일까?

사면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스테인레스 엘레베이터는 참 난감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눈을 둘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그 공간을 가까스로 버티고 드디어 집으로 향한다.

서울에 위치한 회사를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건 여간 쉽지 않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부대끼는 것은 견딜 수 있는데, 정말 힘든 건 코를 찌르는 냄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이 한 공간에 뭉쳐서 들어나는 악취는 참기 어렵다.

그 악취를 들숨과 날숨을 조절해서 참고참아 30-40분을 견디고 나의 아늑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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