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애도 원치 않아

나에게 가족이란, 특별하다.

좋은 의미에서, 나쁜 의미에서 가족이 참 특별하다. 나에게 유년시절 가족은 ‘긴장’ 그 자체였다. 30대 후반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긴장감이 내 가족에겐 항상있었다.

그 긴장은 큰 이유도 아닌 엄마, 아빠의 서로 양보하지 않는 의견에서 항상 시작됐다. 작은 의견 다툼은 우는 엄마의 모습으로 끝나곤 했고, 멀쩡한 집은 무언가로 더렵혀지곤 했다.

매일 ‘긴장’의 연속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자주 외식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런데도 나에게 가족, 특히 부부라는 단어는 와닿지가 않았다. 부부라는게 어려워 보이기도, 혹은 엄마, 아빠가 항상 안타까웠기 때문에 그렇게 나에겐 부부라는 단어가 멀어지고, 결혼도 마찬가지고, 자식을 기른다는 생각도 점점 멀어지게 됐다.

난 부모님을 참 사랑하고, 우리 가족이 소중하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싸울때면 내 감정이 그렇게 소모됐었다. 어떻게든 싸움을 진정시키려고 애썼고, 어떻게든 서로가 이해하며 잘 살길 바랬다. 한편으론 언젠간 나도 독립을 할텐데 둘이서 살면 나쁜일이라도 생기는게 아닐까 싶을 걱정도 너무나 컸다.

습관적 불안과 긴장 때문이었을까? 청소년기에 나는 집을 오래 비우질 못했다. 심지어 나는 엄마, 아빠 둘이 집에 있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갔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그렇게 나에겐 부부라는 건 굉장히 긴장되는 관계이고, 그리 행복한 관계가 아님을 스스로가 암묵적으로 정의했다. 

결혼이란 걸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아니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결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불안한 가족에 누군가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럴만한게 우리 부모님은 몇년전까지만해도 서로 싸우고 이혼한다 했을정도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고,, 난 이 긴장을 전부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창피하다는 말이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특별하고 가여운 가족을 누가 이해를 하냔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그 벽을 세우고 결혼은 먼 이야기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끼며 살아갔다. 또 결혼을 등한시하게 되니,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난 가족의 긴장감을 핑계로 결혼을 피해가며 살아갔다.